Sunday, July 31, 2011

코르뷔지에 /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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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티라는 메두사를 대적하기 위한 페르세우스의 모자가 르 코르뷔지에에게 조감의 망원경이었던 반면, 벤야민에게는 영화 카메라라는 광학 기계 장치였다. 전자가 창공 위에서 망원경의 투시도적 시선으로 지상을 내려다보며 도시 경관의 새로운 질서를 욕망했던 반면, 후자는 유리창을 영화 카메라로 대체해 새로운 신체적 감각을 획득한 주체의 출현을 꿈꿨다. 달리 말해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가는 기하학의 순수 질서로 외부 세계를 재구성하려고 한다면, 벤야민의 새로운 주체는 신체와 세계 사이에 광학 기계 장치를 끼워 넣고 신경 감응을 시도하는 것이다. 외부로 향하는 것과 내부로 향하는 것, 세계의 형태를 바꾸는 것과 몸의 감각을 바꾸는 것. 구성의 시대와 투쟁의 시대."


박해천. 2011. 콘크리트 유토피아. 서울: 자음과 모음. 33
 
 
 

Friday, July 29, 2011

"거리는 집단의 거처이다."



 "거리는 집단의 거처이다. 집단은 영원히 불안정하며 영원히 유동적인 존재로, 자택에서 사방의 벽으로 보호받고 있는 개인만큼이나 집의 벽들 사이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인식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집단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에나멜 간판은 부르주아의 응접실에 걸린 유화만큼이나 멋진 - 어쩌면 더 나은 - 벽장식이며, '벽보금지'가 붙어 있는 벽은 집단의 필기대, 신문 가판대는 서재, 우편함은 청동상, 벤치는 침실의 가구이며, 카페의 테라스는 가사를 감독하는 출창이다. 노상의 노동자들이 웃옷을 걸쳐놓는 난간은 현관이며, 안마당에서 옥외로 이어지는 출입구는 시민들에게는 깜짝 놀랄 만큼 긴 복도로, 이것은 노동자들에게는 도시의 내실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보면 아케이드는 응접실이었다. 거리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더 이 아케이드에서 대중에게 가구를 구비한 편안한 실내로 모습을 드러낸다." [M 3a,4]


 "19세기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리와 주거의 도취적인 상호 침투 - 특히 산책자의 체험에서 - 에는 예언적인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호침투가 새로운 건축 기술을 냉정한 현실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M 3a, 5]


발터 벤야민. 2008. 아케이드 프로젝트 - 도시의 산책자. 조형준 역. 서울: 새물결. 23-24.